와인과 미술을 함께 즐기는 법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정희태 저자 인터뷰
평소 와인에 대해 그림에 대해 따로따로 잘 알고 계셨던 분들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두 가지 문화를 함께 느껴보며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22.05.17)
와인과 예술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서로 전혀 다른 주제이기에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주제에서 공통된 가치와 감정을 찾고 느낄 수 있다.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는 와인을 알지 못해도, 미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볼 수 있는 ‘와인&미술 동시 입문서’이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10년간 미술관 투어를 진행한 입담으로, 흥미진진하게 와인과 미술을 엮었다.
교육적이고 틀에 박힌 방식으로 접근하는 흔한 와인 책이 아닌 예술과 함께하는 감성적이고 편안한 이야기, 그리고 와인과 예술에 대한 기본 지식을 익힐 수 있는 내용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와인과 예술에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와인과 예술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안녕하세요. 정희태 작가님.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을 공동 집필 이후 두 번째 책을 내셨습니다. 미술관 가이드라고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와인 책을 내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현재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자격을 가지고 프랑스 박물관, 미술관 및 문화재 등에서 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프랑스에 왔던 이유는 와인을 공부하기 위해서였어요.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은 와인 평론가였거든요. 와인의 중심 부르고뉴 지역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듣고 여러 와이너리를 방문하면서 와인에 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프랑스 오기 전에는 약 1년 동안 홍대에 있는 와인바에서 일했고 와인 수입사에서도 약 1년간 일하기도 했어요. 현재는 주로 미술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그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답니다. 마침 동양북스에서 와인 책을 내자고 제안해 주셔서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좋아 와인이 생각나는 요즘, 딱 맞는 책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와인과 미술, 이 두 가지를 엮어 책으로 내게 된 건가요? 와인을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이 ‘미술’인 건가요?
저는 운이 좋게 와인과 미술에 대해 공부했고 많이 접하고 느끼면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 경험들이 많아지다 보니 어느 날부터 그림을 감상할 때 특정 와인이 생각나고, 와인을 마시면서는 특정 그림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화려한 꽃 그림을 볼 때 그 꽃향기가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와인이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그림과 와인을 엮으면 두 가지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저는 와인을 더 재미있게 즐길 방법의 하나가 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감각의 동물이다 보니 함께하는 사람과 음악, 그리고 공간의 분위기 등에 따라 그날의 와인 맛과 향이 달라집니다. 저렴한 와인이라도 수백만 원의 와인보다 더 가치 있게 즐길 때가 있죠. 이렇듯 미술과 함께 와인을 즐기면 그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와인을 마실 수 있고, 그 순간을 더 또렷이 기억할 수 있습니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계신데요, 프랑스에서 와인을 즐기는 것과 한국에서 와인을 즐기는 것에는 차이가 있나요?
가장 큰 차이라면 와인을 즐기는 방법과 와인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날에 그 순간을 더욱 빛내주기 위해 와인을 마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에티켓도 지켜야 할 것 같고 격식을 차려서 마셔야 하는 약간 어려운 술처럼 자리매김했죠. 하지만 프랑스에서 와인은 일상에 항상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하는 소주와 같은 술이 프랑스에서는 와인입니다. 그렇기에 특별한 에티켓과 격식이 필요하지 않고 편안하게 즐긴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역사적 사건, 감정, 예술가의 작품 등 36개의 키워드로 주제를 구성한 것이 인상 깊었는데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다른 와인 책들과의 차별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와인 책 대다수가 백과사전 스타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포도 종류에 따라 와인이 달라지고 와인 산지마다 다른 특성들이 있기에 사전과 같이 정리해서 보는 것이 와인을 공부하기에 더 수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딱딱해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죠.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영어 단어를 외울 때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어를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 어떤 것을 연상해서 외우면 훨씬 더 쉽게 암기할 수 있고 머릿속에 오래 기억됩니다. 이 책이 지닌 차별점도 이것 같습니다.
기존의 와인 책들은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백과사전과 같은 것이라면 이 책은 그림과 함께 와인을 연상하며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에 담을 수 있어 와인을 더 쉽게 알아가고 즐길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입니다.
저는 첫 번째 ‘의외성’이라는 주제의 내용에서 마네의 작품과 ‘파리의 심판’ 사건이 예술계와 와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와인과 미술에 관한 에피소드 중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시거나 많이 알았으면 하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두 번째 ‘사건’이라는 키워드로 적은 내용입니다. 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바로 ‘필록세라’ 사건입니다. 유럽의 포도밭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으로 이에 따라 와인 생산량이 줄고 상대적으로 위스키와 맥주 등의 생산량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포도밭의 관리가 엄격해지고 와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많은 시도가 이 사건 이후로 시작되었죠.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역사적이 사건을 그림으로 남겨 놓은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그의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라는 작품이 그때 당시 필록세라 때문에 변해버린 포도밭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고흐가 살아 있는 동안 판매된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기에 더욱더 흥미롭게 와인과 그림을 만나볼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2005년에 처음 칼롱 세귀르를 마셨지만 17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때 맡았던 향과 맛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고 인상 깊게 마셨던 와인은 어떤 것인가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저게 최고의 와인 한 병은 장자크 콩퓌롱 생산자의 샹볼 뮈지니 와인입니다. 왜냐하면 이 와인 한 병 덕분에 제가 부르고뉴에서 와인을 공부했고, 현재 프랑스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홍대 와인바에서 일하고 있을 때, 한 단골손님께서 이 와인을 주문하시고 저에게 시음해 보라며 한 잔 따라 주셨습니다. 근데 손님이 갑자기 몰려와 잔을 한쪽으로 미뤄두고 2-3시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바쁜 순간이 지나가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구석에 미뤄둔 와인이 그때 눈에 들어왔고 시음하기 위해 잔을 들고 코로 향기를 맡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마치 꽃밭 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꽃집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수십 수백 가지의 꽃 향들이 응축되어 한 번에 느껴지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와인 잔을 들고 함께 일하고 있던 동료들에게 뛰어가 향 좀 맡아보라며 제가 호들갑을 떨었던 것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그리고 독자님들께 한 말씀해 주신다면?
이 책은 와인과 미술을 시작하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백과사전 같은 미술 책과 와인 책은 부담스럽고 싫은 분들에게 좋을 것 같아요. 또한 평소 와인에 대해 그림에 대해 따로따로 잘 알고 계셨던 분들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두 가지 문화를 함께 느껴보며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와인과 미술에 대해 알지 못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삶을 더욱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여러 문화생활 중 하나가 와인과 미술인 것 같아요. 쳇바퀴 돌아가듯 살아가는 일상에서 미술 작품들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와인 한잔과 함께 나누는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생각을 들으며 갇혀 있던 나의 틀을 깨 나가며 나를 성장시켜나갈 수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이 독자분들에게 한층 더 즐거운 일상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만드는 그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희태 와인과 미술에 취해 파리에서 살아가는 중. 대학에서 요리를 공부하다 와인에 빠져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왔다. 와인의 중심 부르고뉴 지역에서 수믈리에 과정과 와인 시음 과정을 수료했고, 프랑스 각지의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와인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이후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했고,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한 프랑스 문화재에서 10년째 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박물관』(공저)과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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